Lord Valentine’s Castle (Majipoor Cycle #1) – Robert Silver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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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14,000년 전에 개척한 거대한 행성 매지푸어에는 세 개의 대륙과 200억에 달하는 여러 종족들이 살고 있다. 정치/행정은 얼핸로얼 대륙 한가운데 30마일 높이에 달하는 ‘성의 산’ 꼭대기에 위치한 성에서 살고 있는 집정관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새로운 집정관이 선출되면 전임자는 아래 계곡의 ‘미궁’으로 들어가 대신관이 되며, 새로 선출된 집정관의 생모는 ‘잠의 섬’에 있는 사원으로 가서 ‘잠의 여왕’이 되어 매지푸어 거주자들의 꿈 속에 포근하고 따사로운 꿈을 보내준다. 반대로 남쪽의 서브레이얼 대륙 어딘가에서는 ‘꿈의 왕’이 범법자들의 꿈 속에 섬뜩한 악몽을 불어넣는 역할을 맡는다. 지금까지는 이런 권력배분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짐로엘 대륙 서쪽 해안에 위치한 항구도시 피드루이드 외곽의 언덕에서 한 남자가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의 이름은 밸런타인. 하지만 이름 말고 그가 자신에 대해서 기억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마운트들을 팔기 위해 피드루이드로 향하던 샤나미어라는 소년과 동행하게 된 밸런타인은 우연히 마주친 저글러 무리에게 고용되어 마침 즉위를 기념하여 피드루이드를 순방한, 자신과 이름이 같은 집정관 밸런타인 경 앞에서 저글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날 이후부터 밸런타인은 기묘한 꿈에 시달리게 되는데, 괴로워하는 그를 보다 못한 연인 캐러벨라는 그에게 ‘꿈을 읽는 자’를 찾아가 보라고 충고한다. ‘꿈을 읽는 자’를 찾아간 밸런타인은 자신이 떠돌이 저글러 밸런타인이 아니라 진짜 집정관 밸런타인 경이었으며, ‘꿈의 왕’의 계략에 걸려들어 ‘꿈의 왕’의 아들과 육체와 영혼을 바꿔치기 당하고 모든 기억을 잃은 채 매지푸어 세계를 떠돌아다니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잃어버린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밸런타인과 그의 저글러 동료들의 험난한 모험이 시작된다. 바다 건너 잠의 여왕의 ‘사원’으로, 그 너머 대신관이 살고 있는 얼핸로얼 대륙의 ‘미궁’으로, 마지막으로 ‘성의 산’ 꼭대기에 있는 밸런타인 경의 성까지.

‘Lord Valentine’s Castle’을 읽었다. 뭐, ‘Dying Inside’나 ‘The Book of Skulls’ 수준까지 바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휴고상 후보에까지 오른 책이니까 재미있겠지 생각하고 집어들었는데…

지루했다.

예전에 홍인기님께서 쓰신 리뷰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배경이 되는 Majipoor는 무려 200억에 달하는 인구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행성이다(실버버그는 이 아이디어를 잭 밴스의 ‘The Big Planet’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행성의 끝에서 끝까지 순례를 떠나는 내용으로 450페이지(내가 본 판본은 Bantam판… 최근에 리프린트된 Eos판은 530페이지)에 걸쳐 이야기를 하면서 독자의 흥미를 붙들어 놓으려면, 극적인 플롯과 복잡한 스토리, 그리고 여기 곁들여 공감할 수 있는 인물상과 생생한 배경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작품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이런 것들이 없거나 아주 부족하다는 데 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대륙 이쪽에서 저쪽에 있는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너무 심심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서 밋밋하고 단조로운 작품이 되어버렸다. 주인공인 밸런타인이 순례를 하면서 강을 건너다 급류에 휩쓸린다거나, 메타모프 족에게 습격을 당한다거나, 바다 드래곤에게 잡아먹힌다거나 하는 어려움을 겪기는 하지만, 너무 뻔한 방법으로 쉽게 극복해내서 싱겁게 느껴졌다.

또한, 부당한 방법으로 집정관 자리를 찬탈했지만, 도미닌(King of Dreams의 아들)이 유별난 폭군인 것도 아니다. 이 친구가 휘두른 학정이라고 해봤자 겨우 저글러 쿼터제(?)라든지 세금 조금 더 내라 하는 것들 뿐이다. 전혀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왜 굳이 밸런타인이 도미닌 대신 집정관 자리에 다시 올라야 하는지 Majipoor의 신민들은 물론이고 독자인 나까지도 납득하기가 어렵다(심지어는 주인공 자신도 여기에 대한 확신이 없는 듯하다-_-) 물론 작가는 결말에 배치한 ‘완전 의외의 사건’을 통해 이 싸움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거기까지(한 430페이지 지점이었을걸?) 가기가 진짜 힘들다.

그렇다고 이 작품에 온통 불만만 있는 건 아니다. 실버버그는 건재한 필력으로 Majipoor라는 신세계를 화려하게 채색하고 있다. 작품은 다양한 종족들과 기이한 생명체들, 그리고 독자의 상상력을 시험하는 듯한 거대한 인공 구조물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로 가득 차 있다. 스토리텔링이 망쳐놓은 배경이 아까울 정도이다. 그리고 밸런타인이라는 긍정적이고 밝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결론적으로 말해, 장르소설의 가장 큰 덕목을 재미라고 본다면, ‘Lord Valentine’s Castle’은 상당히 미흡한 작품이다. 그렇지만 장르소설에서의 상상력이라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완전 형편 없는 작품이라고 하기도 뭣하다. 그냥 원서 빨리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시간 날 때 한 번 읽어볼만한 수준이다. 나도 ‘Majipoor Chronicles’ (Majipoor의 역사 속에서 있었던 중요한 사건들을 다룬 단편집) 정도만 더 읽어보고, 그 이후에 나온 속편이나 Lord Prestimon 3부작은 안 읽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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