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긴 시간이 흐른 뒤인 먼 미래, 태양은 빛을 잃어 코발트 색 하늘 위에 흐릿한 오렌지색 광원으로만 남아 있고 대지는 끝없이 침식과 융기를 반복하는 동안 예전의 형태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 속에서 수많은 문명들이 부침을 거듭하면서 탑과 성곽을 쌓고 도시를 이루었지만, 이제 남아 있는 것은 폐허가 된 유적과, 이 시대에는 마법으로 알려진 옛 과학기술의 희미한 기억들 뿐이다. 인류는 전성기의 활력을 완전히 상실했고, 소수의 살아남은 자들은 머지 않아 다가올 종말의 순간- 태양이 완전히 빛을 잃고 온 세계가 암흑에 휩싸이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말초적인 쾌락에 탐닉한다.
‘The Dying Earth’는 1950년에 발표된 잭 밴스의 첫 번째 장편이자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소위 원미래 SF/팬터지라고 하는 하위장르를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팬터지들은 배경을 아주 오래된 과거(또는 과거를 연상케 하는 이차세계)로 잡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The Dying Earth’는 시간축상에서 반대방향인 ‘시간의 끝End of Time’에 무대를 설정하면서도 하이 팬터지적인 time abyss를 고양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또한 황폐화된 먼 미래의 지구를 매력적으로 묘사하여 후대의 작품들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를테면 마이클 무어콕의 Hawkmoon 사가(Tales of the Eternal Champion)나 진 울프의 ‘The Book of the New Sun’ 시리즈 등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The Dying Earth’는 상당히 퇴폐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배경은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단순한 설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작품의 정조와 성격까지도 결정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배경이 되는 ‘임박한 태양계의 소멸’이라는 자연과학적인 환경은 죽어가는 지구 위에 발을 딛고 사는 인간들의 무기력한 모습의 원인이 되고, 이 두 가지는 상호조응하여 작품의 분위기를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다.
‘The Dying Earth’의 세계에서도 극소수의 인간들은 여전히 지식과 사랑을 찾아 폐허가 된 대지를 방랑한다. 하지만 이들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다 해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탐색의 성취일 뿐 곧 다가올 파국에 대한 근본적이 해결책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 주인공들은 어디까지나 유한하고 무력한 존재에 머물며 작품 전체에 드리운 종말론적인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Guyal of Sfere’의 끝부분에서 Guyal은 오랫동안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수수께끼들을 해결하기 위해 Shierl과 함께 Museum of Man에 도착하여 Kerlin the Qurator로부터 모든 지식에 대한 접근권을 얻어내지만, 그것마저도 머지 않아 닥칠 전행성 차원의 파국 앞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Knowledge is ours, Shierl- all of knowing to our call. And what shall we do?”
게다가 이 작품은 같은 배경을 공유하면서 앞 에피소드의 주연이 뒤 에피소드의 조연으로 등장하는, 소위 스핀 오프spin-off 방식으로 느슨하게 연결된 여섯 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런 구성은 이 작품의 초점이 인물이나 사건에 맞추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독자들의 관심을 배경으로 돌리기 위한 적극적인 의도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The Dying Earth’에서 배경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느 작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그 결과 이 작품은 인물이나 사건보다는 배경과 그 배경이 환기하는 분위기를 묘사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게다가 베스터나 젤라즈니처럼 현란한 문체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아름다운- 마치 강물이 도도히 흐르는 것처럼 ‘유장하다’고 할 만한 밴스의 문체는 이러한 묘사의 효과를 충실히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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