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623년. 영국은 사자왕 리처드와 그를 보필하는 뱀파이어 귀족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영국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샤를마뉴 황제, 훈 족의 아틸라, 심지어 교황마저도 그들 자신이 뱀파이어거나, 혹은 뱀파이어들의 도움을 받아 유럽을 통치하고 있다. 이들의 가혹한 통치를 가능케 하는 헤게모니는 바로 인간들의 약점, 곧 영생에 대한 갈망과 죽음에 대한 공포이다. 따라서 계몽주의자들은 과학과 마법을 비롯한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뱀파이어들의 약점을 찾아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일단 뱀파이어가 되면 부상을 입거나 질병에 시달리지도 않고 수 세기에 걸친 삶을 누리는 반면, 여자는 불임이 되고 남자는 성욕이 현저히 줄어든다. 따라서 이들이 개체수를 늘리는 방법은 단 하나, 평범한 인간을 뱀파이어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면 뱀파이어들은 어떻게 재생산되는가?
과학자이자 궁정대신인 에드먼드 코더리는 현미경을 고안하여 미생물의 세계를 탐구하면서 이 지식을 이용해서 뱀파이어들의 생식에 얽힌 비밀을 알아내면 이들의 제국을 뒤엎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자기 몸에 흑사병의 병원균을 접종한 다음 한때 연인이었던, 리처드의 뱀파이어 후궁 레이디 카밀라가 자기 피를 빨도록 해서 감염되도록 만든다. 에드먼드는 카밀라의 칼에 죽게 되지만, 그 전에 아들인 노엘 코더리를 몰래 빼돌린다. 노엘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수도원에 숨어 있다가 마침 수도원을 기습한 해적 랑구아스와 집시 소녀 레일라가 이끄는 해적단에 스승인 퀸투스와 함께 합류해서 영국을 탈출, 수천 년 전 인간으로부터 진화한 최초의 뱀파이어가 나타났던 아프리카의 아다마와라 왕국으로 건너간다. 그는 우루바 부족의 거주지를 발견하고서 자신이 전설상의 ‘뱀파이어들의 낙원’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곳에서 아버지와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뱀파이어들의 준(準)불멸(emortality)의 비밀을 알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얻은 지식을 유럽에 전파하기 위해 몰타 섬의 본거지로 돌아온 그를 리처드와 드라큘라 공 블라드 체페슈의 연합함대가 가로막는다.
이것도 참 오래 전에(아마 1년 전쯤) 읽은 책인데… 이제 감상문을 쓰려니 기억이 가물가물한다. 보통 장편소설이라면 중간중간 나올 법한 유머나 액션도 없이,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어서 처음 읽었을 때부터 정말 진지한 작품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먼저 이 작품은 일생을 다 바쳐 압제와 싸운 한 인간의 일대기라는 차원에서 해석해볼 수 있다. 작품의 주인공인 노엘 코더리는 평생을 뱀파이어들에 관한 연구에 바치면서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인물이다. 이런 노엘의 태도는 그의 여성 관계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마치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오랫동안 곁에 머물면서 자신을 지켜봐주었던 레일라의 사랑에 감사하면서도 이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 채, 뱀파이어 레이디에게 강렬한 성적 매력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그는 마침내 죽음을 앞두고서야, 자신의 소명과 연구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특히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는, 노엘이 블라드 체페슈 앞에서 사자후를 토하는 부분은 마치 이단심문관 앞에서 진리의 불멸성을 역설하는 과학자 같은 느낌이라 상당히 감동적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 소설은,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기에 유럽에서 일어난 수많은 변화 가운데 과학혁명의 영향력, 특히 종교와 과학의 충돌을 대하 역사소설의 틀 속에서 되새겨본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째서 이 작품의 뱀파이어리즘을 종교의 은유로 보느냐 하면, 기독교가 천국에 대한 열망과 지옥에 대한 공포로 신도들을 미혹시켰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의 뱀파이어들은 자신들에게 복종하는 극소수의 인간을 뱀파이어로 만들어 영생을 주는 반면, 반항하는 자들을 본보기 삼아 끔찍한 방법으로 처형해서 민중들의 가슴속에 공포를 심는다는 점에서 비슷하기 때문이다. 단지 여기에 인간을 뱀파이어로 바꾸는 “테크놀로지”(나중에 결말 부분에서 이 “테크놀로지”에 대해 현대 과학의 개념으로 재해석을 가하는 부분이 나온다)가 개입되어 있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랄까.
그러므로 테크놀로지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 하는 문제가 이 작품의 주제를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전반적인 문제 의식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혜택으로부터 배제된 세상에서, 과학기술의 확산은 인간을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는가’인데, 인간을 뱀파이어로 바꾸는 “테크놀로지”가 온세계에 널리 퍼진 결과,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된 대다수의 인간과, 유전적 문제로 인해 뱀파이어가 될 수 없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300년 후의 “현대”로 넘어오게 되는 결말에서는 ‘소수의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혜택으로부터 배제된다면 그 과학기술은 정의롭다 할 수 있는가’하는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다. 이 문제에 대해 스테이블포드는 마지막 생존자인 레일라의 입을 빌어, 노엘이 그랬던 것처럼 모든 학문과 예술, 발명이 평범한 인간들의 손에 말미암았다고 지적하면서, 인간으로서 남게 된 사람들이야말로 뱀파이어들이 인간이기를 포기한 이후 그토록 시샘했던 인간됨(being human)을 온전히 지켰기 때문에, 영생을 누리지 못한다고 해도 그리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다고 그들을 위로한다. 결국 이 작품은 과학기술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며, 비록 그 혜택을 누리지는 못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런 문제보다는 인간성을 지켜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말하려 한 듯하다. 자연히 작가인 스테이블포드도 어떻게 보면 나이브하다 싶을 정도로 긍정적인 태도로 과학기술의 발전과 확산을 통한 사회적 진보를 묘사하고 있다.
대하 역사소설답게 다소 호흡이 길고 약간 칙칙한 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진실을 파헤치는 데 평생을 바친 한 인간의 일생과, 그로 인해 완전히 변해버린 세계상을 시종일관 차분하게 그리고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또한, 과학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하는 현대 테크놀로지를 배제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과학소설의 본질적인 측면 가운데 하나인 테크놀로지와 세계의 상호관계라는 문제에 오히려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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