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열 살 먹은 하비는 만사가 귀찮고 따분하기만 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릭터스라는 사람이 하비의 방에 마술처럼 나타나 자신이 멋진 곳, 매일 낮에는 태양이 따사로이 빛나고 매일 밤에는 섬뜩한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휴일의 저택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한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하비도 계속되는 릭터스의 유혹에 넘어가, 엄마에게도 아무 말 없이 릭터스를 따라 집을 나선다.
그렇게 휴일의 저택에 온 하비. 아침은 따스한 봄으로 시작해서 후덥지근한 여름인 점심을 지나 온종일 뛰어놀다 보면 저녁 먹기 전에 가을잎이 떨어지고 어느새 할로윈의 저녁이 찾아온 뒤 자정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으면 하루가 지나간다. 이렇게 신선놀음을 즐기던 하비는 어느 날 휴일의 저택과 그 주인인 미스터 후드의 무서운 비밀을 알게 되고, 여기서 보낸 시간에 대해 자신이 치뤄야 할 대가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시간의 도둑The Thief of Always’는 바커가 처음으로 쓴 영 어덜트 팬터지(young adult fantasy; 성인과 아동 모두를 독자로 잡은 환상소설)로, 에로티시즘과 적나라한 잔혹함으로 덧칠된 이전의 비블로그래피를 돌이켜 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화기이기도 한 바커는 이 소설 안에서 사용된 30여 점이 넘는 삽화를 직접 그리기도 했다.
일단 소설을 처음 읽고 나면, 시간을 훔쳐가는 존재라는 모티프에서 많은 독자들이 미카엘 엔데의 ‘모모Momo’와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모모’에서 엔데가 시간과 대립쌍을 이루는 것으로 제시하는 것이 금전으로 환산 가능한 현대적 효율성인데 반해, 바커가 ‘시간의 도둑’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시간, 그리고 시간과 길항(拮抗)적 관계로 결부된 생명력(vitality)의 문제라는 점에서 두 작품은 확연히 다르다. 이 점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소설의 20장인 ‘The Thieves Meet’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해 휴일의 저택으로 돌아온 하비는 다락방에서 드디어 후드와 조우하게 되는데, 이때 후드는 이곳에 머물렀던 아이들로부터 빼앗은 시간을 조그마한 공처럼 만들어 한창 빨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이 장면에서의 후드는 흡사 에스파냐의 화가 고야의 작품인 ‘아이를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의 모습을 방불케 하는데, 재미있는 건 로마 신화의 사투르누스가 그리스 신화에서 크로노스(시간)와 동일한 속성을 지닌 신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비가 맞서 싸워야 하는 대상은 모든 것을 낳는 동시에 자신이 낳은 것들을 무(無)로 되돌리는 시간 그 자체인 것이다. 후드는 하비의 영혼도 손에 넣기 위해 하비를 회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알겠다.” 그가 말했다.
“뭘 알겠다는 거야?”
“왜 네가 돌아왔는지를.”
하비가 네가 빼앗아 간 걸 돌려받으려고 왔다고 대답하려 했지만, 앞의 두 마디를 채 꺼내기도 전에 후드가 말을 바로잡았다.
“여기가 좋다는 걸 깨닫고 돌아온 게지.” 후드가 말했다. “우린 둘 다 도둑이다, 하비 스윅. 난 시간을 훔치고, 넌 생명을 훔치지. 하지만 결국 우리는 똑같다. 둘 다 언제나 훔치는 자들이라는 점에서.”
우리들 인간은 모두 각자의 분량만큼 시간을 지니고 태어나며, 그 시간을 생명으로 바꾸면서 살아간다. 따라서 우리가 가진 시간은 갈수록 줄어들고, 대신 생명은 그 시간이 다할 때까지 이어진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시간을 팔고 생명을 사는 불가역적인 거래인 셈이다. 이 거래의 천칭에서 후드와 하비는 대척점에 놓여 있으며, 둘은 양립할 수 없는 관계로 끝없이 투쟁한다. 이런 이유에서 후드는 하비 역시 자신의 동류이며 일종의 뱀파이어라고 말한 것이다.
“그래 나도 어린애들을 잡아먹게 될 거란 말이냐, 너처럼?” 하비가 말했다. “고맙지만 사양하겠어.”
“너도 꽤 좋아할 텐데, 하비 스윅.” 후드가 말했다. “너의 몸속에도 이미 뱀파이어의 기질이 깃들어 있잖아.”
이 말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뱀파이어라는 말에 하비는 할로윈 저녁에 하늘을 날았던 일을 떠올렸다. 붉게 충혈된 눈과 면도칼처럼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채 달을 등지고 날아오르던 것을.
앞부분에서 하비는 할로윈의 밤에 후드의 종복 가운데 하나인 마의 도움을 받아 뱀파이어로 변신하는데, 아주 잠깐이나마 자신의 본능에 따라 친구 웬델의 피를 마시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여기서 뱀파이어로의 변신은 하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삶의 본질적인 조건,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 없이 다른 생명들을 대신 희생시켜야만 한다는 평범하면서도 무자비한 진리를 상기시킨다. 이처럼 바커의 작품 속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변신(transformation)이라는 모티프는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와 이를 둘러싼 세계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를 제공함으로써 반대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하비가 후드의 네 번째 종복인 카나를 어떻게 물리치는지 보라.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시간의 도둑’은 ‘모모’에 비해 작품의 구조에서는 보다 중층적이고 복잡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작품의 엔트로피를 끌어올리려는 결말 처리에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냥 깔끔하게 끝내는 것도 괜찮았을 듯 한데.
이제부터는 한국어판에 대해서 몇 마디 하겠다. 첫째, 제목인 ‘The Thief of Always’는 앞서 언급한 대로 ‘시간의 도둑’인 후드 뿐만 아니라 ‘생명력의 도둑’인 하비를 동시에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자는 제목을 전자에 한정시켜 번역함으로써, 원제의 중의적 의미를 탈색시켰다. ‘Always의 도둑’, 다시 말해 ‘언제나 훔치는 자들’ 쪽이 (좀 어색할런지는 몰라도) 의미상으로는 더 정확하다고 본다. 둘째, 왜 하필이면 이 책을 기획, 번역했는지가 의문이다.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책은 분량도 얼마 안 되고 어휘나 표현도 아주 쉽기 때문에 원서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큰 무리 없이 금새 읽을 수 있다. 게다가 작가의 전집을 번역할 것이 아닌 이상은 소개할 수 있는 작품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을 먼저 번역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일 터, 그렇다면 바커의 장편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하는 ‘The Damnation Game’이 먼저 번역되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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