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7일, 뉴욕 근교의 중산계층 소도시 햄스테드에 위치한 텔프로라는 군수업체의 연구소에서, 군사목적으로 실험 중이던 DRG-16이라는 무색무취의 치명적인 화학물질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당국은 사고를 은폐하고 연구소를 폐쇄시키지만, 대기 중에 누출된 ‘사고(思考)하는 구름’ – DRG-16은 기류를 타고 햄스테드 상공에 머무르게 된다. DRG-16의 영향으로 주민들은 환각을 보게 되고, 오랫동안 잠잠하던 이 작은 도시는 여자들을 표적으로 삼은 연쇄살인사건과 어린아이들의 자살, 그리고 정체불명의 괴질로 동요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은 좀 더 오래 전, 햄스테드가 처음 건설되었던 3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홀연히 나타나 햄스테드 토지의 절반을 손에 넣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다섯 번째 개척자 – ‘the Dragon’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던 그 남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암흑의 여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햄스테드의 인구가 반으로 줄어들었나? 그리고 300년 전의 사건이 어째서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건가?
이것은 처음 있었던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었을 뿐. 햄스테드에 사는 소설가 그레이엄 윌리엄스는 이 모든 사건들을 전지전능한(아니, 전지전능하지 않은) 작가의 시점에서 차분하게 기술한다. 그는 다섯 번째 개척자가 나머지 네 개척자의 후손들이 다시 햄스테드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그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햄스테드에 다시 한 번 거대한 악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도시는 점점 황폐해져 가는데…
네 번째 장편 ‘고스트 스토리Ghost Story’로 큰 명성을 얻은 피터 스트로브의 여섯 번째 장편이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전통적인 테마를 현대적인 배경에서 재해석하려는 시도이다. 이 작품은 선조의 죄과가 혈통을 따라 끝없이 유전된다는 내용을 다룬다는 점에서 너새니얼 호손의 ‘일곱 박공의 집’을 비롯한 미국 고딕 로맨스의 전통적인 테마를 그대로 끌어들이면서도, 80년대 미국 모던 호러가 즐겨쓰던 배경인 교외 지역(suburb)인 햄스테드를 배경으로 삼아, 선대의 문학적 유산과 동시대 작가들의 영향력을 동시에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특징은 이 작품이 포스트모던 문학에서 자주 논의되는 메타픽션의 방법론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메타픽션이란 소설을 다루는 소설, 즉 소설 작법의 규칙 자체를 소설의 소재로 사용하는 소설을 의미한다. 이 작품은 도입부와 1~2장까지 햄스테드의 간략한 역사와 DRG-16의 누출, 그리고 네 개척자의 후손이 햄스테드에 다시 모이게 되는 모습을 전지적 작가의 관점에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소설 속 등장인물로서 네 개척자의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인 그레이엄 윌리엄스가 갑자기 3장에서 전면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말하기 시작한다.
“본능적으로 나는 지금이야말로 모든 등장인물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으면서 그들에 대해 공정한 입장의 신적 화자라는 위장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낼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이런 태도를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다, 내 자신을 내비칠 때는 전혀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은 나, 그레이엄 윌리엄스이다. 여러분들은 그냥 그레이엄이라고 부르면 된다. 아니, 그러지 않는 편이 낫겠다. 내 나이 일흔 여섯에서 열 살 터울일 리는 없으니, 미스터 윌리엄스라고 하자. (중략) 위장을 벗고 뛰쳐나와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팻친 카운티 남쪽에서 일어난 일들을 겪고도 이렇게 살아 남았기 때문인데, 그 당시에 쓰고 있던 책은 그 일을 소재로 삼고 있다. 내가 모르는 부분에서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건들은 내가 추리한 대로 일어났거나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줄곧 사태를 관찰하면서 많은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일이 끝났을 때 리처드 올비는 나에게 ‘책으로 내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고, 여러분들은 끝까지 읽어보면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은 나에게 일기를 보여주었고, 이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거기서 나왔다.”
그레이엄은 ‘Floating Dragon’이 작품내 등장인물에 의해 쓰여진 ‘소설 속의 소설’이라고 선언하고 있는데, 이것은 메타픽션에서 흔히 말하는 틀 깨기(frame breaking)이라는 기법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사실주의 소설들은 외부에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실재가 존재하며, 작품 속 세계는 그 실재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에서는 그런 실재란 존재하지 않으며, 작품 속에서 말하는 현실이란 어디까지나 작가의 관점에 의해 해체되고 재구성된 또 하나의 세계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방법론으로서 메타픽션은 작품 속에서 다루어지는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을 다루는 작가의 관점에 문제를 제기한다. 메타픽션을 쓰는 작가들은 이런 식으로 직접 작품 속에 주인공이나 관찰자로 등장, 우리가 암묵적으로 ‘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허약한 가정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폭로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딜레마가 발생한다. 사실주의의 전통에 굳건히 뿌리박은 주류소설에서라면 이런 식의 실험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 ‘Floating Dragon’은 어디까지나 공포소설인 동시에, 환상성의 정도에 따른 보이어와 자호스키의 구분에 따르자면 낮은 환상성의 소설(low fantasy)에 속하는 작품이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런 종류의 작품들이 주로 환기시키는 감정인 공포, 낯설음 등의 감정은 작품의 배경이나 상황이 얼마나 현실적이냐에 달려 있는데, 배경과 상황이 현실적일수록 환기되는 공포감은 배가된다. 그러므로 메타픽션이 노리는 효과인 ‘현실의 재구성’은 자칫 장르 소설로서의 특징인 공포감을 훼손시킬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스트로브는 이런 딜레마를 충실한 서사라는 정공법으로 돌파하고 있다. 장편 공포소설에 숙달된 작가라고 해도 600페이지라는 분량에 걸쳐 처음부터 끝까지 공포감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스트로브는 그레이엄의 펜을 빌려 다른 두 개척자의 후손인 리처드와 팻시의 일기, 그리고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재구성한 파편화된 이야기들로 작품을 가득 채우고 있고, 그 결과 상당히 규모가 큰 작품임에도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나열식 에피소드들의 연속이 작품 전체의 응집력을 해치고 서사를 방만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S. T. Joshi의 비판 또한 설득력 있다고 하겠다.
그 외에도 이 작품에서는 중간에 가짜 결말(pseudo-ending)을 집어넣는다던지, 결말을 모호하게 처리해서 독자들이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도록 열어둔다던지 하는 기법을 구사하고 있지만, 일일이 다 설명하자면 끝이 없기 때문에 이쯤 해두겠다. 정리하자면, 이 작품은 메타픽션의 방법론을 공포소설에 이식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참신하고 재미 있었지만, 그만큼 많은 한계를 노출시키기도 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스트로브는 이 작품 외에도 ‘코코Koko’-‘미스터리Mystery’-‘목The Throat’으로 이어지는 소위 푸른 장미 3부작(Blue Rose Trilogy)에서도 이런 메타픽션의 기법을 차용하고 있다니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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