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ive Barker’s A-Z of Horror – Clive Barker & Stephen J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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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클라이브 바커가 TV 프로그램 진행자 노릇을 잠깐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프로그램은 다름 아닌 영국 BBC 방송사의 의뢰로 만들어진 26부작 다큐멘터리인 ‘Clive Barker’s A-Z of Horror’인데, 이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에서도 다큐멘터리 채널인 Q채널에서 ‘클라이브 바커의 공포로의 초대’라는 제목으로 방영했었다.

이 프로그램은 영국에서 1997년에 방영된 직후에 상당히 의아하다는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왜냐하면 BBC 방송국 출판부에서 tie-in으로 출판된 동명의 책과는 달리, 21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다 2개 장의 내용이 책과 달랐기 때문이다. 나머지 다섯 개의 장은 2001년에 영국의 한 케이블 채널에서 재방송 때 방영되었지만, 그때는 알파벳 순서를 무시하고 완전히 새로운 구성으로 방송되었다. ‘Y for Year Zero’에서 소개될 예정이었던 만화 출판사 Savoy Books의 편집장 마이크 버터워스의 후일담에 의하면, BBC의 편집과정에서 검열로 인해 그 부분이 잘려나간 것이라고 한다.

“그 사람들은 호러 장르를 무성의하게 대했다. 일 년을 질질 끌다가 마침내 그 프로그램이 방영되었을 때에도 그들은 H. R. 기거, 그리고 우리와 앨런 무어, 데이빗 크로넨버그, 랩 아티스트 그레이브디거즈가 나오는 모던 호러 부분을 잘라내고 (데니스 휘틀리는 남겨놓았다) 프로그램을 여러 부분에서 간섭했었다. … (중략) … 나는 그것이 분명한 검열로 정말 멍청한 짓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미국 하퍼프리즘에서 나온 하드커버 책은 살 만한 것 같다.”

이 책은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TV 시리즈에 기반한 논픽션으로, 앞에서 언급했듯이 1997년 프로그램 방영과 동시에 BBC 방송사 출판부에서 출판되었으며 약간의 시차를 두고 미국의 HarperPrism에서도 나왔다. 내용면에서는 동명의 프로그램에서 사용된 바커의 스크립트에 편집인인 스티브 존스가 수 많은 자료(어록, 사진, 작품목록, 인용문, 영화해설 등)를 붙인 다음, 바커가 소개하는 글을 쓰고 직접 그린 삽화를 넣어 완성했다. 책 제목대로 알파벳 순서에 따라 26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단 이 책의 미덕을 들자면, 거의 모든 호러의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나 소설, 만화처럼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분야는 기본이고, 연극, 회화, 조각, 사진, 시 같은 미처 생각도 못한 곳에서까지 공포의 그림자를 끌어내고 있는데, 역시 바커 같은 르네상스 맨만이 해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스티븐 존스가 첨가한 방대한 양의 자료들은 보고 읽는 즐거움을 더해 준다.

그러나 반대로, 그런 방대함은 약점이기도 하다. 너무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호러를 다루다 보니 불가피하게 책의 내용이 가벼워졌다. 이 책에서 어떤 채계적인 호러의 분석은 찾기 힘든 한편,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서술과 인용만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호러에 관한 모든 것을 집약해 놓은 책이라기보다는, 책의 뒷표지에 ‘a terrifyingly intimate tour of his personal sources and secrets’라고 적혀 있듯이 바커의 작품세계가 형성되는 데 영향을 준 것들에 대한 개인적인 회고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G for Grim Tales’를 읽으면서 ‘시간의 도둑The Thief of Always’에 나타난 전래 동화들의 영향을 느끼고, ‘K for Killing Joke’에서 ‘Forms of Heaven’이나 ‘Incarnations’ 같은 초기 바커 희곡 작품들을 떠울린 것이 필자 뿐일까? 그런 의미에서 아마존 리뷰어가 ‘호러 백과사전이라기보다는 클라이브 바커의 스크랩북에 가깝다’고 평한 것은 꽤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 책에는 그렇게 체계적인 이해나 깊이 있는 지식을 제공해 줄 만한 것은 없어서, 호러라는 장르에 대해 이미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이제 막 장르에 진입한 독자들에게 더 어울릴 듯하다. 아울러 이 책은 바커 개인에게 영향을 미친 요소들을 알아보는 데도 도움이 될 듯 한데, 바커의 작품들을 일부 발췌/편집해서 해설한 ‘The Essential Clive Barker’와 병행해서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자료로 사용하면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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